[유정아의 말하기 칼럼 17] 같은 얘기 다른 기억
- Posted at 07 19, 2008 11:37
- Filed under 理性
아침에 차를 몰고 여의도 KBS로 향한다. 방송이 끝나면 대학으로 가서 강의를 하고 약속 장소나 녹화 장소로 향한다. 운전을 하면서 많은 앞 차를 보게 된다. 그런데 어느 날은 아침에 만난 그 흔치 않은 옛날 엑셀을 하루 종일 마주치거나, 아니면 보기 드문 최신 포르셰를 몇 번이나 뒤따라가게 되는 날들이 있다. 정말 그랬을까.
사실은 그렇지 않다. 한 번 강한 인상으로 뇌리에 기억된 차종을 다시 보게 되면 그 기억이 강화되고, 거기다 한 번 더 그 차종 뒤에 서는 날이면 ‘오늘 참 희한한 날’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왜냐하면 나는 내가 만난 그 많은 앞 차들 중 특정 차종을 부지불식간에 필터링(filtering)하기 때문이다. ‘필터링’은 원하지 않는 정보를 걸러낸다는 의미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을 때 틀린 말을 발견했다고 하자. 그의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또 한번의 실수를 찾게 되고, 이제 그의 말은 ‘실수투성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 다음부터는 맞는 말, 잘한 말은 안 들리고 틀린 말만을 필터링하게 된다. 반대로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로 귀가 확 트이고 나서 또 한 번 웃음을 터뜨리고 나면, 아예 웃을 준비를 하고 그의 이야기를 경청하게 된다.
우리는 진공 상태, 백지 상태에서 소통하는 것이 아니다. 경험과 입장, 처지가 다른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말을 주고받는 상황에서는 이러저러한 심리적 잡음(雜音)들이 끼어들어 제대로 듣고 말하지 못하게 된다. 그와 나와의 정치적 입장이 같은지, 여성에 대한 생각은 어떤지, 광신자는 아닌지, 혹 지난날의 상처로 편견을 가지고 있진 않은지…. 그 모든 것이 필터링의 이유, 심리적 잡음의 요인이 된다.
만일 그가 나와 같다면, 나는 그의 아주 작은 부분만 듣고 그와 나를 동일시(assimilation)한다. 만일 그가 많은 부분 나와 다르다면, 나와 다른 부분만을 들으며 ‘거 봐, 내 저런 말 할 줄 알았어’라며 나와 대조(contrast)시킨다. 나와 같은 이의 다른 말, 나와 다른 이의 의미 있는 말들은 내 듣기의 체에 걸러지지 않고 아래로 흘러내려 사라진다. 같은 이야기를 함께 듣고도 사람마다 기억하는 부분이 다른 것은 그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듣다 보면 어떻게 될까. 상대에 대한 이해나 주제의 이해에 도달하지 못한다. 받아들일 만한 맞는 정보도 듣지 못한다. 듣고 싶은 것만 들으며 완벽하게 맹신, 또는 감정이입하거나, 아니면 반대로 잘못한 ‘거리’만 찾아가며 비난하게 된다.
한때 ‘비판적 듣기’ ‘비판적 사고’라는 말이 유행했었다. 물론 진리를 탐구하는 데에 두 사람 이상이 필요한 이유가, 한 사람은 말하고 다른 한 사람은 비판적으로 듣고 피드백하며 그렇게 점검하고 수정하며 나아가야 하기 때문임에는 이론이 없다. 그러나 그 비판은 비판을 위한 비판에 머물러선 안 된다. 듣는 이의 피드백은 목적이 있어야 한다. 말한 이로부터 보다 나은 것을 끄집어 내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이 거창한 진리는 아니더라도 함께 우리가 무언가를 만들어 나가기 위해서다.
만약 생각 없이 행한 비판이 말한 이에게 상처만 되어 더 나은 것을 행할 의욕마저 없애버리게 된다면 그 비판은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한다. 듣고 싶은 것만 듣는 필터링의 관성을 탈피하여 들은 메시지에 자신의 삶의 경험과 해석을 가미해 듣고, 의문이 생기면 질문을 통해 의미들을 공유하며 함께 확장시키는 과정이 진정한 듣고 말하기 과정이다. 이것이 비판적 듣기(critical listening)를 넘어선 구성적 듣기, 건설적 듣기(constructive listening)의 방법이라 하겠다.
Posted by Youngz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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