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정아의 말하기 칼럼 14] 舌禍와 筆禍 수습책은 사과뿐
- Posted at 07 19, 2008 11:34
- Filed under 理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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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6자회담을 앞두고 부시 미국 대통령이 유엔총회 연설에서 북한을 잔혹한 정권(brutal regime)이라 비판한 것이 만일 회담에 악재로 작용한다면 그것은 필화일까 설화일까. 미국 대통령이 유엔에서 하는 연설은 미리 준비된 말을 하는 자리이다. 즉 ‘잔혹한 정권’이란 표현은 말하기를 전제로 한 글쓰기의 소산인 것이다. 발음이 부정확하고 말실수가 잦은 대통령을 위해 발음기호 달린 연설문을 만들 정도로 백악관은 사전에 연설을 철저히 준비한다. 그러니 연설문을 그대로 낭독한 이번 말의 경우 6자회담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면, 그것은 부시 한 사람의 설화라기보다는 미국 정부의 필화라 할 수 있다. 한번 더 생각해 본다면 이는 미국 측의 계산된 말이지 실수가 아닐 가능성이 크다. ‘잔혹한 정권’이라는 표현을 통해 미국은 이 말이 국제정치적으로 미칠 영향을 바란 것일 수도 있다.
이렇듯 공식적인 말도 가끔 문제가 되지만 비공식적인 대화의 경우 문제를 자주 일으킨다. 말로 인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사람들이 대처하는 자세는 여러 가지이다.
첫째 ‘I didn’t do it’ 유형. 녹화 테이프를 되돌려 그 말을 했던 장면이 찾아지기 전까지 막무가내로 ‘그런 말 한 적 없다’고 우기는 것이다. 최근 학력 위조로 논란에 휩싸였던 한 연예인이 “난 그 대학에 다녔다고 직접 말한 적 없다”고 했지만 한 방송사의 집요한 추적으로 십수 년 전 그 말을 한 장면을 찾아냈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대표적 오리발은 수많은 정치인들 사이에서 찾을 수 있겠다. 정치란 거의 영화 ‘메멘토’처럼 사람을 단기 기억상실증 환자로 만드는 듯하다.
둘째 ‘It wasn’t so bad’ 유형. ‘그 말을 하긴 했지만, 그게 뭐 그리 잘못됐느냐’는 것이다. 잔혹한 정권이라 했지만, 벨로루시·시리아·이란을 함께 지칭하면서 어떻게 북한을 빼놓을 수 있었겠느냐. 잔혹한 정권이란 말이 뭐 틀렸느냐고 반문하는 것이다.
셋째 ‘Yes, but’ 유형. ‘그렇다. 하지만 이러저러한 사정이 있었다’며 변명을 둘러대는 것이다. 잔혹한 정권이라 했다. 하지만 다른 나라들과의 형평성도 있고, 미국 대통령 정도 됐을 땐 이런저런 것 다 배려해 그런 정도로 표현한다 등등 사정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둘째 경우와 비슷하지만 좀 더 약하게 보이는 반응이라 할 수 있다.
말로 인해 문제가 발생했을 때 수습하는 방법, 마지막으로 무엇이 남았겠는가. 사과다. 깨끗이 자신이 한 말을 시인하고 잘못했다고 용서를 비는 것이다. 모르면 모른다고 말하는 사람을 세상은 욕하지 않는다. 실수와 잘못을 진심으로 인정하고 사과하는 사람에게 세상은 등 돌리지 않는다. 모르는데 아는 척, 아닌 데 그런 척, 하고도 안 한 척, 잘못했으면서도 잘한 척하는 사람이 대접받는다는 생각은 일시적 착각이다. 세상이 아무리 변하고 정치가 아무리 중요하며 강대국이 아무리 오만해도 사람 간의 본질이 변하랴. 그렇지 않다.
Posted by Youngz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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