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정아의 말하기 칼럼 16] 논리적이던 그들 토론에서 진 이유
- Posted at 07 19, 2008 11:36
- Filed under 理性
토론에서 이긴다는 건 상대가 내세우는 논거의 모순을 지적하고 자기 논거의 정당성과 합리성을 보여 상대가 반론을 펴거나 논박할 수 없도록 하는 것, 즉 논파(論破)하는 것을 말한다. 그렇다면 이 논파란 상대를 독 안에 든 생쥐로 만드는 것을 말하는
가. 그렇지 않다.
몇 년 전 학생들을 이끌고 대학생 토론 대회에 참가했다. 말하기 수업을 수강하는 제자들과 서울대 말하기 동아리 ‘다담’ 학생들로 구성된 우리 참가단은 두 사람씩 한 조를 이뤄 10여 팀이었다. 대회 전 함께 모여 열심히 훈련했다. 논제, 즉 주장(claim)에 대한 근거(data)를 수집해 쟁점화하고 이 근거들이 왜 주장을 뒷받침하는지 보장(warrant)을 마련했다. 또 상대가 반박할 만한 근거들에 대해 재반박 준비도 했다. 교차조사가 있는 토론 방식인 CEDA(cross examination debate association) 방식이니 차근차근 상대의 허점을 파헤칠 질문도 준비했다.
대회는 리그 형식으로 논제에 대해 찬성, 반대를 번갈아 해보는 것으로 진행됐다. 열심히 준비한 우수한 제자들은 한 차례의 토론을 마치고 나올 때마다 “선생님, 우리가 잘한 것 같아요. 상대가 우리의 그 쟁점에 대해 반박을 못 했어요”, 혹은 “그쪽의 그 근거에 대해 우리가 교차조사를 통해 완전히 물고 늘어져 심사위원도 고개를 끄덕이시는 걸 봤어요” 등등 자신감을 드러내며 상기된 얼굴로 결과를 기다렸다.
그러나 결과는 반타작쯤 됐다. 대체 뭐였을까, 무엇이 그들의 승리 예감을 꺾고 패배를 안긴 것일까.
다음날 본선에 진출하게 된 네댓 팀과 그날로 고배를 마신 더 많은 팀들과 함께 술잔을 기울이며 그날 저녁, 패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모두 우승을 위해 출전한 것도 아니었고 대학생 토론 대회의 취지 자체도 학생들의 토론 문화 형성과 그를 위한 체계적 훈련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하기 위함이었지만, 그래도 무엇이 토론에서 이기고 지게 하는 것인지를 알고 돌아가야 마음에 새길 것이기 때문이다.
각 팀의 경험을 종합해 보건대, 진 팀들의 패인은 논파의 즐거움에 매몰돼 상대를 배려하지 못하고 궁지에 빠진 상대를 끝까지 몰고 갔다는 데 있었다. 토론을 지켜보는 이와 그 상대까지 자신의 주장으로 끌어들일 수 있으려면 보는 이의 마음을 움직여야 한다. 사람의 마음은 꼭 논리적으로 옳은 것에만 움직이지 않는다. 물론 말과 사물의 이치가 맞아야 함(logos)은 기본이지만 말하는 자의 정직성과 윤리성(ethos), 상대를 배척하거나 타도하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생각해 설득하려 하는 듯한 선한 느낌(pathos) 등이 합쳐져 마음은 움직인다. 그런데 제자들은 논리로 이기고 있다는 자신감이 든 바로 그 순간, 보는 이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 실패한 것이다. 논리적이고 정직하고 윤리적이긴 했겠으나, 상대를 압도해 이기고 싶다는 욕망이 보는 이로 하여금 오히려 논파당하는 불쌍한 쪽에 마음을 주게 만든 것이다.
그날 이후 토론 수업에서 꼭 빼놓지 않고 학생들에게 하는 이야기는 화광동진(和光同塵)의 고사다. ‘내 빛을 엷게 하여 먼지와 같이 하다’는 뜻의 이 말은, 세상이 꼭 빛나는 어떤 것으로 채워지거나 움직이지 않는다는 씁쓸한 진리를 상기시키기도 하지만, 세상과 사람을 좋은 의도로 바꿔나가고 싶은 ‘빛나는 존재’들이 세상을 얻으려면 자신의 빛을 엷게 하여 세상의 먼지와 나란히 할 줄 알아야 한다는 귀한 진리를 일깨워준다.
다음날 본선에서는 담담하게 논지를 펼치던 팀들이 좋은 성적을 거뒀다. 무엇보다 그날의 제자들은 한 번의 패배로 인생에서 승리보다 더욱 귀한 교훈을 얻었다.
가. 그렇지 않다.
몇 년 전 학생들을 이끌고 대학생 토론 대회에 참가했다. 말하기 수업을 수강하는 제자들과 서울대 말하기 동아리 ‘다담’ 학생들로 구성된 우리 참가단은 두 사람씩 한 조를 이뤄 10여 팀이었다. 대회 전 함께 모여 열심히 훈련했다. 논제, 즉 주장(claim)에 대한 근거(data)를 수집해 쟁점화하고 이 근거들이 왜 주장을 뒷받침하는지 보장(warrant)을 마련했다. 또 상대가 반박할 만한 근거들에 대해 재반박 준비도 했다. 교차조사가 있는 토론 방식인 CEDA(cross examination debate association) 방식이니 차근차근 상대의 허점을 파헤칠 질문도 준비했다.
대회는 리그 형식으로 논제에 대해 찬성, 반대를 번갈아 해보는 것으로 진행됐다. 열심히 준비한 우수한 제자들은 한 차례의 토론을 마치고 나올 때마다 “선생님, 우리가 잘한 것 같아요. 상대가 우리의 그 쟁점에 대해 반박을 못 했어요”, 혹은 “그쪽의 그 근거에 대해 우리가 교차조사를 통해 완전히 물고 늘어져 심사위원도 고개를 끄덕이시는 걸 봤어요” 등등 자신감을 드러내며 상기된 얼굴로 결과를 기다렸다.
그러나 결과는 반타작쯤 됐다. 대체 뭐였을까, 무엇이 그들의 승리 예감을 꺾고 패배를 안긴 것일까.
다음날 본선에 진출하게 된 네댓 팀과 그날로 고배를 마신 더 많은 팀들과 함께 술잔을 기울이며 그날 저녁, 패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모두 우승을 위해 출전한 것도 아니었고 대학생 토론 대회의 취지 자체도 학생들의 토론 문화 형성과 그를 위한 체계적 훈련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하기 위함이었지만, 그래도 무엇이 토론에서 이기고 지게 하는 것인지를 알고 돌아가야 마음에 새길 것이기 때문이다.
각 팀의 경험을 종합해 보건대, 진 팀들의 패인은 논파의 즐거움에 매몰돼 상대를 배려하지 못하고 궁지에 빠진 상대를 끝까지 몰고 갔다는 데 있었다. 토론을 지켜보는 이와 그 상대까지 자신의 주장으로 끌어들일 수 있으려면 보는 이의 마음을 움직여야 한다. 사람의 마음은 꼭 논리적으로 옳은 것에만 움직이지 않는다. 물론 말과 사물의 이치가 맞아야 함(logos)은 기본이지만 말하는 자의 정직성과 윤리성(ethos), 상대를 배척하거나 타도하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생각해 설득하려 하는 듯한 선한 느낌(pathos) 등이 합쳐져 마음은 움직인다. 그런데 제자들은 논리로 이기고 있다는 자신감이 든 바로 그 순간, 보는 이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 실패한 것이다. 논리적이고 정직하고 윤리적이긴 했겠으나, 상대를 압도해 이기고 싶다는 욕망이 보는 이로 하여금 오히려 논파당하는 불쌍한 쪽에 마음을 주게 만든 것이다.
그날 이후 토론 수업에서 꼭 빼놓지 않고 학생들에게 하는 이야기는 화광동진(和光同塵)의 고사다. ‘내 빛을 엷게 하여 먼지와 같이 하다’는 뜻의 이 말은, 세상이 꼭 빛나는 어떤 것으로 채워지거나 움직이지 않는다는 씁쓸한 진리를 상기시키기도 하지만, 세상과 사람을 좋은 의도로 바꿔나가고 싶은 ‘빛나는 존재’들이 세상을 얻으려면 자신의 빛을 엷게 하여 세상의 먼지와 나란히 할 줄 알아야 한다는 귀한 진리를 일깨워준다.
다음날 본선에서는 담담하게 논지를 펼치던 팀들이 좋은 성적을 거뒀다. 무엇보다 그날의 제자들은 한 번의 패배로 인생에서 승리보다 더욱 귀한 교훈을 얻었다.
Posted by Youngzoo
- Response
- No Trackback , No Comment
Trackback URL : http://youngzoo.net/trackback/62


